Monday, October 27, 2014

건기 공주(Puteri Kemarau)



신영덕교수의 인니이야기 | 건기 공주(Puteri Kemarau)
자카르타 경제신문14-10-26 20:10
옛날 이야기 중에는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는 인신공희(人身供犧)설화가 많다.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동서양에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건기 공주>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마가렛(Margareth Theresia, 경희대 대학원)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남부 수마트라에 즐리따니(Jelitani)라는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건기에 태어나서 사람들은건기공주라고 불렀다. 공주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현명한 왕이어서 왕국은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그런데어느 날 건기가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어서 호수 및 강이 말라버렸다. 초원이 햇빛 때문에 모두 타버렸다. 소와 닭들이 죽어버리자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었다. 왕은해법을 찾기 위해 예언자를 만났다. 그러나수백예언자를 만나도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왕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마을에 초능력을 가진 예언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은 그 예언자를 찾아 갔다.
“예언자님, 우리나라의 백성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해결 방법을 알려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예언자는 “전하, 해답은 공주의 꿈에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은“그럼, 공주에게 물어보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곧 왕궁으로 돌아갔다.
왕궁에 도착했을 때 왕궁 공원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공주의 모습을 보았다.
왕은 공주에게 “아버지가 초능력이 있는 예언자를 만났다.”라고 말했다.
공주는 아버지에게 물었다.”예언자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언자님은해법이 공주의 꿈에서 나올 거라고 말했다. 혹시 공주가 꿈을 꾸었는가?”
건기 공주는 “아직 안 꾸었습니다, 아바마마. 그렇지만 이런 문제는 하느님에게 맡겨야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주의 말을 듣고 왕은 깜짝 놀랐다. 딸이 매우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왕은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였다. “네 말이 맞다. 네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공주야!”
공주는 왕에게 백성들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했다.며칠 후 공주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아, 우리나라 여자 중 한명이 바다에 몸을 바치면 고생이 끝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공주는 아버지에게 꿈을 전했다. 알고 보니 왕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왕은 모든 백성들을 모이게 했다.
“사랑하는 백성들아, 여자 한명이바다에 몸을 바치면 우리의 고생은 끝날 것이다. 누가 우리나라를 위해 나설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모든 여자들이 무서워 하며 왕의 물음에 대답을 못 했다. 이때갑자기 공주가 일어나서 “제가사랑하는 백성과 아바마마를 위해 희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 특히 왕이 당황했다. 공주는 외동딸이라서 죽으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안돼!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너밖에 없다. 넌 이 나라의 여왕이 되어야 한다. 안 된다!” 라고 왕이 외쳤다.
그렇지만 왕은공주의 뜻을 바꿀 수 없었다. 공주는“이것은 제 운명이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날 밤 왕은 슬펐지만 공주를 데리고 절벽으로 갔다. 바다에 바쳐지기 전에 공주는“아바마마, 저의모든 실수를 용서하옵소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 왕은 울었다. 그렇지만 딸을 말릴 수 없었다.
건기 공주는 바다에 몸을 바쳤다. 공주의 몸이 바다에 닿을 때 비구름이 몰려왔고 천둥이 쳤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비가 왔다. 나라에 물이 다시 풍부해졌다. 모든 백성들이 기뻐했다. 그러나 왕은 슬펐다. 나라가 다시 풍요로워졌지만 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리자왕이 절벽을 떠났다.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잠을잤다. 꿈에서 “절벽으로 다시 가라! 딸을 만나라!”라고 하는큰 소리를 들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왕은다시 절벽으로 갔다. 절벽에 도착한 왕은 산호 위에 서 있는 공주를 보았다. 왕과 백성들이진심으로 희생 제물을 바쳐서 하느님이 공주의 목숨을 건져준 것이었다.
왕은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감사를 한 후에 왕은 공주를 왕궁으로 데리고 왔다. 몇년후에 공주는 여왕이 되었다.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건기 공주> 이야기는 인신공희(人身供犧)설화를 근원설화로 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목적을 위해 젊은 처녀가 바다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심청전>과 유사하다. 외동딸이라는 점,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죽지 않고 나중에 여왕 혹은 황후가 된다는 점 등은 특히 그러하다. 물론 두 이야기에는 차이점도 많이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Wednesday, October 22, 2014

민요의 이해


 <민요의 이해>
「한국 구비문학의 이해」에 요약 및 인도네시아 민요 소개

                                                                                      석사 1기 마가렛 테레시아

1.   민요란 무엇인가
1)  민요의 개념과 범주
민요는 민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민요民謠에서 민民은 백성, 대중을 의미한다. 요謠는 소리, 즉 자연스럽게 발생한 노래라는 뜻으로, 음악적 반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민중은 근대 이전사회의 피지배계급을 말한다. 민요는 본디 모래 담당층의 계급성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민요에 대한 문제의식의 본질은 민중이라는 계급성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노래 가운데는 민중의 것이 아니면서도 민요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장르들이 있다. 통속민요와 시민요 그것이다. 성격은 다르면서도 양식은 민여를 닮은 노래인 것이다. 그래서 통속민요와 시민요는 유사민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사민요가 점차 활기를 띠면서 순수한 민중의 노래인 본래의 민요와 이것들을 변별하여 부를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 설정된 용어가 황토민요이다. 그러므로 향토민요는 유사민요와의 구분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며, 본래의 민요는 그냥 민요라고 부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향토민요, 통속민요, 신민요는 양식적인 면에서 비슷한 노래이에 그 성격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향토민요는 민중들의 생활을 기반으로 자생하며, 생활과 함께 존속하는 비전문적인 노래라는 것이다. 신민요는 일제강점기 때 음반에 담아 판매할 목적으로 특징인의 작사와 작곡을 통해 만들어진민요풍의 노래를 말한다. 통속민요의 노래 가운데는 향토민요화 되어 기존민요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양자의 관계가 서로 얽혀 있는 면이 있다. 민요의 개념을 받아들여 그것을 통속민요라고 하고, 대신에 본래의 민요는 향토민요라고 이름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문화적 개념으로 말할 때의 민요는 민중의 노래로 한정하며, 양식적 개념으로 말할 때의 민요는 향토민요와 통속민요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그 범주를 설정하자는 것이다.

2)  민요의 특징
노래의 장르들도 생명이 있어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민요는 완전히 소멸되도록 방치할 수 없었다. 민요는 모두 외래문화요소를 지닌 근대 이후의 노래들과 달리 우리 전통사회의 문화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화물이기 때문이다. [2]민요는 노래이며, 구전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요는 설화, 민속극등과 구분된다. 민속극에도 노래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이다. 민요는 전문성이 없는 일반적인 민중의 노래라는 점에서 노래로 된 다른 구전물과 구별된다. 민요는 민중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 온 노래다. 민요는 민중이 널리 부를 뿐 만 아니라, 그 음악적, 문화적 성격도 민중적이다. 가곡, 가사, 시조는 평민가객平民歌客이 불러도 지적知的이며 점잖은 노래라는 점에서 양반문학의 일부라 할 수 있다. [3]민요는 민중들의 생활에 필요한 바른 충족시킬 수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민요의 구연은 스스로 즐기거나 함께 즐기는 것을 뿐,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민요는 자족적인 동기에 의해 구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민족적으로, 지역적으로, 그리고 계급적으로 그 고유성이 강하게 유지되는 노래다. 민요는 민중의 생각을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민중만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요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존속된다고 했다. 민요가 지역애 따라 다른 면을 보이게 되는 것은 그것이 민중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요는 민중의 문학 중에서도 다른 장르보다 민족적 고유성을 보다 잘 간직하고 있다. 민여가 민중의 기층적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삶은 쉽게 변화되지 않은 속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민요는 구전물의 하나로서 비전문적인 민중이 삶의 필요에 따라 불러온 노래이다. 민요는 구전문학 가운데서도 기층성이 가장 강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2.   민요의 역사
1)  삼국시대까지의 민요
한민족의 노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사서史書인 여러 문헌중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4]. 노래는 구석기시대에 사냥이 잘 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심리에 의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까지의 사회는 아직 신분의 계급화가 분명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노래 또한 계급문화적 성격을 뚜렷하게 가질 수 없었다. 청동기 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노래도 계급적 형편에 맞추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야 했다. 노래의 계급적 차별화에는 현악기가 일정한 몫을 했다. 민요의 성립시기는 부족국가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앞 시대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노동요의 종류가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그물당기는소리>와 함께 <노젓는소리>를 노래하였을 것이다. 부여와 진한에 있었다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의 기록은 부족국가시대의 국가 시설물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이며, 이로써 건축자재를 나르며 부르는 <목도하는소리> 같은 토건노동요도 부족국가시대에 존재하였을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영묘사 장육상을 만들 진흙을 나르는 데도 <풍요>를 불렀다 하니,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기 357년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벽화에 키질하는 여인의 모습과 디딜방아를 찧는 여인의 모습이 있으며, 또 지금 향가로 남아 있는 <풍요>가 본래 방아찧으며 부르던 노래라고 했으니,삼국시대에는 제분정민요도 활발하게 불렸을 것이다. 삼국시대에 이르면 부녀자들의 노동요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된다고 하겠다.

2)  고려시대까지의 민요
통일신라시대 이후 민요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논농사의 보급과 발달이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쌀의 생산이 잡곡의 생산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하며, 고려시대에 들면 벼의 생산이 더욱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논농사의 비중이 커지면 노동력의 투입도 그만큼 많아지며,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노동요의 필요성은 증대된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신라말이나 고려초에는 <모심는소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논농사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말에는 일부 지역에서나마 <모심는소리>가 존재했다. 영남지역의 대표적 <모심는소리><정가소리>는 이 때부터 부른 것임을 알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서사민요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어느 시기에 서사민요가 이미 존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의 속악 가운데는 민요를 채택한 것이 재법 있어서 이것들을 통해 당시의 민요형태를 다소나마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민요에서 47가보 2행형식은 <어랑타령>, <뱃노래> 같이 노래 자체를 즐기기 위해 부르는 가창유희요에 믾이 나타나며, 부정행영식은  <논매는 소리>, <노젓는소리> 같은 노동요에 많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경기체가가 제4행까지의 가창구조는 <아라리>를비롯한 오늘날 4가보 2행 형식의 민요에서 흔히 발견되고 있다. 고려 속악에는 현재의 민요와 통하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민요는 노래문화적 역량도 신장되어 고려의 궁중가요에 대한 기반문하로서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고려의 궁중 가요가 민요의 이모저모를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민요응 노래라는 문화장르로서의 성과를 이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  조선시대의 민요
조선은 건국초부터 농업을 중시하는 중농정책을 펴나갔다. 이러한 연고로 농요는 조선 초기부터 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성종과 중종 때에 민요수집에 대한 문제가 다시 기록될 필요가 있었다. 조선전기에 왕과 지배층이 민요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통치적인 것이었다. 농정에 관심을 둔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취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에는 고려 때와 달리 민요와 상층가요와의 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17세기말 내지 18세기초는 논농사요가 완성된 시기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시기의 <모심는소리> 가운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노래는<상사소리>가 있다. 조선후기의 사회는 경제력이 중시되고, 또 그에 따라 신분적경계도 점차 약화되어 조선전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로써 민요는 향토민요와 통속민요라는 이원적 범주로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후기에 민요의 지원을 많이 받은 장르로는 판소리와 탈춤도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 민요취향이 대두되면서 민요의 정조, 소재, 표현 등을 채용한 한시가 상당수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선후기의 민요는 상층문화로서의 작용을 거듭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 여건에 맞추어 성장하는 하층의 문화장르들을 지원하였다.

3.   인도네시아 민요 소개
인도네시아  민요는 “nyanyian rakyat”이라고 하지만 “lagu daerah”이라고 유명한다. 의미를 보면, “Lagu”가 노래이고 “daerah”은 지방이다. 그래서 인도시아 민요가 인도네시아의 지방에 있는 백성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33()가 있다.[5] 각도마다 민요가 있고 특징이 다른다. 인도네시아 민요도 인도네시아어로 부르지 않지만 방언으로 부른다. 예를 들면 북수마트라에 있는 민요가 바탁어를 쓰고 서자바에 있는 민요가 순다어를 쓰고 등이다.
5개 큰 섬에 있는 민요가:
     1.    수마트라 섬
가.  Alusi Au (알루시 아우): 제목의 뜻은 날 대답해이다. 사랑 노래이다.
나.  Butet (부텟): 부텟은 아버지가 딸에게 호칭이다. 전쟁에 있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그리움에대한 노래이다.
다.  Ayam Den Lapeh (아얌 덴라뻬): 제목의 뜻은 내 닭이 풀렸어이다. 닭이 풀려 잃어버려서 깜짝 놀라기에 대한 노래이다.
라.  Gending Sriwijaya (근딩스리위쟈야): 제목의 뜻은 스리위쟈야 [6]노래이다. 이 노래가 슈리비자야이라는 제국의 노래이다.
마.  Kampuang Nan Jauh di Mato (캄푸앙 난 자우 디 마토): 제목의 뜻은 우리 고향은 너무 멀어이다. 가사가 [7]이렇게 쓰인다.
Kampuang nan jauh di mato (우리 고향은 너무 멀구나)
Gunuang Sansai Baku Liliang (근처에 산이 많구나)
Takana Jo Kawan, Kawan Nan Lamo (우리 오래 만나던 친구가 생각나구나)
Sangkek Basu Liang Suliang (피리를 부는 시간이 되구나)
Panduduknya nan elok nan (사람들이 착하고)
Suko Bagotong Royong (상부상조하는 게 좋구나)
Kok susah samo samo diraso (힌들면 같이 힘들구)
Den Takana Jo Kampuang (난 고향을 기억나구나)
Takana Jo Kampuang (고향을 기억나구나)
Induk Ayah Adik Sadonyo (어머니 아버지 동생 모두 다)
Raso Mangimbau Ngimbau Den Pulang (날 집에 가 달라고 느껴)
Den Takana Jo Kampuang (난 고향을 기억나구나)
     2.    칼리만탄 섬
가.  Ampar-ampar Pisang (암파르 암파르 피상): 이 노래의 의미가 별로 없는다. 아이의 노래라서 가사에서 바나나의 놀이라는 노래이다.
Ampar ampar pisang (바나나를 쌓아)
Pisangku balum masak (내 바나나가 익지 않아)
Masak sabigi dihurung bari-bari (한 개가 익는데 바리바리가[8] 있어)
Masak sabigi dihurung bari-bari (한 개가 익는데 바리바리가 있어)
Mangga lepak mangga lepok (망갈레팍 망갈레폭) [9]
Patah kayu bengkok (구부러진 나무가 부러뜨렸어)
Bengkok dimakan api (비뚤어진 불꽃)
apinya clanculupan (불꽃이 거의 껐어)
Bengkok dimakan api (비뚤어진 불꽃)
apinya clanculupan (불꽃이 거의 껐어)
Nang ma nang batis kutung dikitip bidawang (병신이 되면 비다왕이 그의 먹었어)
Nang ma nang batis kutung dikitip bidawang (병신이 되면 비다왕이 그의 먹었어)
나.  Paris Berantai (파리스 브란타이): 먼 사이에 있는 연애 노래이다.
     3.    파푸아 섬
가.  Apuse (아푸세): 아푸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손자가 항해하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헤어지는 노래이다.
Apuse kokon dao (할아버지 할머니, 저는)
Yarabe soren doreri (도레리,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Wuf lenso bani nema baki pase (손수건도 잡고 손도 흥들고)
Apuse kokon dao (할아버지 할머니, 저는)
Yarabe soren doreri (도레리,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Wuf lenso bani nema baki pase (손수건도 잡고 손도 흥들고)
Arafabye aswarakwar (나는 불쌍해, 잘 가 내 손자)
Arafabye aswarakwar (나는 불쌍해, 잘 가 내 손자)
나.  Yamko Rambe Yamko (얌코 람베 얌코): 전쟁으로 많이 가고 싶은데 전쟁에서 죽은 생태가 많은 전쟁의 노래이다.
     4.    술라웨시 섬
가.  Anging Mamiri (앙잉 맘미리): 짝사랑에 대한 노래이다. 어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산들바람으로 (Anging Mamiri) 편지를 보낸다.
나.  Rasa sayange (라사 사양에): 빤뚠[10] 형식으로 사랑에 대한 노래이다.
Rasa sayange rasa sayang sayange (사랑 느낌, 사랑 사랑 느낌)
Eeee lihat dari jauh rasa sayang sayange (에에에 먼 곳에서 사랑 느낌이 느껴)
Rasa sayange rasa sayang sayange (사랑 느낌, 사랑 사랑 느낌)
Eeee lihat dari jauh rasa sayang sayange (에에에 먼 곳에서 사랑 느낌이 느껴)
Kalau ada sumur di ladang (밭에 우물이 있으면,)
Bolehlah kita menumpang mandi (우리가 목욕할 수 있어)
Kalau ada umurku panjang (나이가 오래되면,)
Bolehlah kita bertemu lagi (우리가 또 만날수 있어)
     5.    자바 섬
가.  Gundul pacul (군둘 파출): 군둘 파출 가사를 보면 지도자는 왕관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괭이 (pacul)를 가지는 사람이다.
나.  Manuk Dadali (마눅 다달리):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노래이다.
다.  Suwe Ora Jamu (수웨 오라 자무): 오랫동안 안 만나기에 대대한 노래이다.
라.  Rek Ayo Rek (렉 아요 렉): 같이 가자는 노래이다.
마.  Kicir kicir (카치르 키치르): 슬픈 마음이 위로하기 위한 노래이다.
Kicir kicir ini lagunya (키치르 키치르[11], 이것이 그의 노래이야)
Lagu lama ya tuan dari Jakarta (오랜 노래, 나으리, 자카르타에서 왔어)
Saya menyanyi ya tuan memang sengaja (저는 노래 부르기, 나으리, 일부러)
Untuk menghibur menghibur hati nan duka (슬픈 마음 위로하기 위해)
Burung dara burung merpati (비둘기, 비둘기)
Terbang cepat ya tuan tiada tara (빨리 날기, 나으리, 겉은 게 없어)
Bilalah kita ya tuan suka menyanyi (우리가, 나으리, 노래 좋으면)
Badanlah sehat ya tuan hati gembira (건강할 수 있어, 나으리, 마음이 기뻐)
Buah mangga enak rasanya (망고 과일, 참 맛있어)
Si manalagi ya tuan paling ternama (만날라기[12], 나으리, 제일 유명해)
Siapa saya ya tuan rajin bekerja (내가 누구, 나으리, 열심히 해)
Pasti menjadi menjadi warga berguna (유용한 사람 될 수 있어)

인도네시아 민요 가사 자료: lirik.kapanlagi.com (2014 10 21, 오후 9 41)




[1] 민요는 민중에 의해 만들어지고 향유되며, 민중에 의해 전승되고, 민중의 사상과 감정을 반영하는 노래이다. 우리 나라는 민요를 소리라고 했으며, 한자어로는 속가俗歌, 속요俗謠, 풍요風謠, 민가民歌, 타령, 동요童謠라 했다. 민요 전승 현장에서는 옛날노래’, ‘구식노래라고도 한다. 이헌흥 외, 「한국 고전문학 강의」, 박이정, 2012, 46 .
[2] 강동학, 「한국민요학의 논리와 시각」, 민속원, 2005, 134 .
[3] 그리고 무가와 불가는 종교를 기반으로 한 노래들이기에 반드시 광범위한 민중적 공감을 자아낸다 할 수 없다. 그러나 민요는 민중이 민중의 생활, 감정, 사상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노래다. 장덕순외, 「구비문학개설」, 일조각, 2006, 116 .
[4] 「동이전」에 의하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거행하고 이때에 남녀노ㅗ소가 밤에 모여 술 마시고 배불리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 가무歌舞를 즐겼다는 것이다. 이때에 부른 노래에서 우리 민요의 옛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임동권, 「한국민요논고」, 민속원, 2006, 14 .
[5] 인도네시아는 총 17,508개의 크고 작은섬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도서국으로, 국토 면적이 1,904,569km2에 달한다. 총인구는 2 4,000(2009)명으로, 중국.인도.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인구대국으로 인구증가율은 2퍼센트로 다소 뫂은 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인 다종족 국가의 하나인데, 쟈바(Jawa)족과 순다 (Sunda)족을 필두로 하여, 마두라(Madura), 바딱(Batak), 아쩨(Aceh), 믈라유(Melayu), 미낭까바우(Minangkabau), 다약(Dayak), 또라자(Toraja), 부기스(Bugis), 마까사르(Makassar), 발리(Bali)족 등 300여 종족이 젝각기 고유한 문화적 바탕을 토대로 다른 종족과 서로 다른 언어, 종교, 관습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종교의 나라답게 무신론자가 거의 없는 나라이다. 양승윤, History of Indonesia, 인도네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9-11 .
[6] 스리위쟈야 (Sriwijaya) 왕국은 7세기 말부터 약 600년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전 수마트라와 말레이 반도, 그리고 서부 쟈바와 서부 칼리만딴 일부에 걸쳐서 크게 발흥했던 불교 왕국이었다. 이 왕국은 역사적 유물이나 유적을 남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사료史料를 통한 분석에는 마치지 못하나, 학자들은 이 국가의 생존 방식이 농업보다 해상 무역이 우선하였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양승윤, History of Indonesia, 인도네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51 .
[7] 파당(Padang)어로 쓰이고 불린다.
[8] 바리바리는 벌레 이름이다.
[9] 나무 소리이다
[10] 빤뚠은 말레이 고전 시중에 하나이다. 빤뚠이 4행시이고 abab 압운 형식으로 만들었다. 줄마다 8~12개 음절이 있다. 주제가 대부분 사랑이다. 첫두번째줄 및 세네번째의 관계가 없다. Ernawati Waridah, 「Kumpulan Majas, Pantun, dan Peribahasa plus Kesusastraan Indonesia, Ruang Kata, 2014, 33 .
[11] 외륜 놀이이다.
[12] 인도네시아 망고 과일 종류 중에 하나이다.

Monday, October 20, 2014

자카 타룹과 나왕울란

신영덕교수의 인니이야기 | 자카 타룹과 나왕울란
자카르타 경제신문 14-10-19 19:44

인도네시아의 설화 중에는 한국의 설화와 유사한 것이 상당히 많다. <자카 타룹과 나왕울란> 설화 역시 그렇다. 오늘은 이 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마가렛(Margareth Theresia)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자카 타룹(Jaka Tarub)이라는 사냥꾼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하다가 연못에서 7명의 선녀들이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목욕한 후 6명의 선녀들은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러나 나왕울란(Nawangwulan)이라는 선녀는 날개옷이 없어서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자카 타룹은 나왕울란을 도와주는 척했다. 밤이 되자 나왕울란은 자카 타룹 집으로 갔다.

결국 자카 타룹과 나왕울란은 결혼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나왕시(Nawangsih)라는 딸을 낳았다. 이들은 아주 행복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쌀 보관 장소에는 쌀이 많이 있었다. 나왕울란이 한 톨의 쌀로 몇 그릇의 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카 타룹은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쌀이 많이 남은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나왕울란이 절대 물어보지 말라고 했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나왕울란이 집에 없을 때 밥솥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그때부터 나왕울란은 보통 여자가 되고 말았다.

이후 남은 쌀은 빨리 없어졌다. 쌀이 조금밖에 안 남았을 때 나왕울란은 자카 타룹이 곡식 보관 장소에 숨겨 놓은 날개옷을 발견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나왕시에게는 매일 우유를 먹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자카 타룹에게는 절대 자기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이후 자카 타룹은 키 아긍 타룹(Ki Ageng Tarub)이라는 마을의 지도자가 되어 마자파힛(Majapahit) 왕국의 브라위자야(Brawijaya) 왕과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브라위자야 왕이 키 아긍 타룹에게 캬이 마헤사 눌라르(Kyai Mahesa Nular)라는 신성한 칼을 보냈다. 칼을 가져온 사절은 키 부윳 마사하르(Ki Buyut Masahar)와 본단 크자완(Bondan Kejawan)이었다. 키 아긍 타룹은 본단 크자완이 브라위자야 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의 마을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본단 크자완은 키 아긍 타룹의 양자가 되어 름부 페텡(Lembu Peteng)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나왕시와 결혼했다. 자카 타룹이 죽자 름부 페텡은 새로운 키 아긍 타룹이 되었다. 나왕시는 키 그타스 판다와(Ki Getas Pandawa)라는 아들을 낳았다. 이후 키 그타스 판다와의 부인은 키 아긍 슬라(Ki Ageng Sela)라는 아들을 낳았다. 키 아긍 슬라의 증손자인 파넴바한 스나파티(Panembahan Senapati)는 마타람(Mataram)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연상케 한다. 비천한 신분의 남성이 선녀와 결혼을 하였지만 금기시 되는 약속을 어김으로써 헤어지고 만다는 전반부의 이야기는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설화는 후반부 내용을 통해서는 마타람 왕국을 건국한 파넴바한 스나파티 왕이 선녀의 후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마타람 왕국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 설화에 건국신화적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Sunday, October 19, 2014

구비문학특강 질문지 (7주 전설의 세계)

석사1기 마가렛 테레시아

문제 1
옛날에 북부 수마트라에서 농부이라는 토바(Toba)가 살아 있었다. 농사를 짓어도 하고 집에 가까운 강에서 가끔 낚시도 했다. 강 안에서 물고기가 많이 있어서 낚시가 쉬었다. 어느 날에 농사 짓기 후에 토바가 낚시하러 강에 갔다. 오랜만에 기다려도 한 물고기도 못 잡았다.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 기분 나빠서 낚시를 그만두고 싶어했지만 갑자기 큰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렸다. 많이 기뻐서 그 물고기를 집에 가져 왔다. 그렇지만 처음 잡을 때부터 물고기가 토바를 계속 바라보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바가 부엌에서 물고기를 가져 왔다. 불을 켜고 싶어해서 잠깐 집에 밑에서 장작을 찾으러 갔다. 부엌을 다시 올 때 물고기가 사라져서 감짝 놀랐다. 물고기를 놓은 그릇 위에서 물고기가 아닌 몇 개 금화가 나왔다. 이상한 느낌이생겨서 침실에 들어갔다. 침실 문에 열을 때 긴 머리 여자가 서 있어서 또 감짝 놀랐다. 여러 가지 마을에 가 본 적이 있어도 그렇게 예쁜 여자가 처음 보았다. 그 여자가 밥하기로 해서 토바를 부엌에 가자고 했다. 밥을 하면서 자기가 그전에 토바가 잡은 물고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금화가 여자의 비늘이었다. 토바가 그 여자를 걸혼하자고 했다. 그여자는 토바에게 자기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이야기 못 하는 약속을 만들었다. 토바가 맹세한 후에 둘이 결혼했다. 일년후에 사모시르 (Samosir)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사모시르를 어머니가 버릇없게 만들었다. 게으른 남자로 되었다.
어느 날에 어머니가 사모시르에게 아버지의 밥을 부탁했다. 싫어해서 거부하지만 어머니가 계속 지시했다. 귀찮하기도 해도 아버지 밥을 주기 위해 논으로 갔다. 논에 가는 중에 아버지의 밥을 거의 모두 다 먹었다. 논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남겨진 밥을 아버지에게 주었다. 토바가 배를 많이 불러서  밥을 빨리 먹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들을 준 밥을 봐서 화가 났다. 아들이 그 밥을 먹은 사실을 알아서 더 화가났다. 아들을 때리면서 무례한 아이야! 물고기의 아들이라서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말했다.
울면서 집에 가는 길에 뛰었다. 어머니에게 아비지가 자기를  때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말도 어머니에게 나누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때 많이 슬퍼했다. 남편이 약속을 못 지켜서 더 슬퍼해졌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언덕에 가고 제일 높은 나무를 타라고 했다. 답 없이 사모시르가 언덕에 빨리 가고 나무를 탔다. 어머니가 아들이 나무를 타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강에 갔다. 강으로 점프해서 다시 물고기로 되었다. 그 여자가 물고기로 바꿀 때 번개를 맞고 비가 많이 내렸다. 비 때문에 홍수가 났다. 비가 오랜만에 끝나지 않아서 홍수가 더 크게 되었다토바는 자기 숨을 살릴 수 없어서 죽어버렸다. 홍수가 나중에 토바 호수 (Danau Toba)[1]가 되었다. 사모시르가 사는 언덕이 호수의 중간에 있는 섬이 되었다. 그 섬이 사모시르 섬 (Pulau Samosir)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장소를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에 토바 호수 전설이 하나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설화가 보면 전설이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토바 호수 전설처럼 장소를 만들기에 대한 이야가 많습니다. 한국 경우는 어떻습니까?
  
문제 2
134-160 쪽에 보면 전설의 유형별 검토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전설이 지명.지형.마을형성 유래 전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1]토바 호(인도네시아어: Danau Toba)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에 있는 칼데라 호수이다. 이 화산호는 초화산이며, 호수 안에 사모시르 섬이 있고, 깊이는 500m가 넘고, 크기는 제주도와 맞먹는다. 74,000년전에 이 화산이 지수 8로 대폭발을 하여, 최악의 화산폭발 중 하나다.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가 햇빛을 가로막아서, 온도가 하강하여 겨울이 수십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래서 빙하기를 가져왔다. 휴화산이다. (자료: http://ko.wikipedia.org/wiki/%ED%86%A0%EB%B0%94_%ED%98%B8, 2014 10 13, 12:38)

Friday, October 10, 2014

자카 타룹 (Jaka Tarub)과 나왕울란 (Nawangwulan)

옛날에 사냥꾼이라는 자카 타룹이 살았다. 어느 날에 사냥했을 자카 타룹이 연못에서 목욕하고 있는 7 선녀들을 보았다. 선녀를 좋아해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다. 목욕한 후에 6 선녀들이 정리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나왕울란이라는 선녀가 날개옷을 잃어버려서 많이 울었다. 자카 타룹이 나왕울란을 보고 도와준 척이었다. 밤이 돼서 나왕울란이 자카 타룹 집에 가는 것을 찬성했다.
결국 둘이 결혼했다. 몇년후에 나왕시 (Nawangsih)라는 딸이 낳았다. 작은 가족 생활이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보관 장소에서 벼가 계속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왕울란이 쌀을 써서 그릇 밥을 있었다. 자카 타룹이 사실을 모르고 많이 궁금했다. 부인이 절대 물어보지 말라고 했어도 궁급했다. 나왕울란 집에 없을 자카 타룹이 밥솥 뚜껑을 열었다. 때부터 나왕울란이 보통 여자가 되었다.
공급이 빨리 써버려졌다. 공급이 조금 밖에 남았을 나왕울란이 자카타룹이 보관 장소에서 숨긴 날개옷을 보았다. 너무 화가나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다만 언덕에서 매일 나왕시에게 우유를 먹인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나왕울란이 자카 타룹에게 나왕울란 앞에 절대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자카 타룹이 아긍 타룹 (Ki Ageng Tarub)이라는 마을 지도자가 되었고 마자파힛 (Majapahit)왕국의 브라위자야 (Brawijaya) 왕과 친구 되었다. 어느 브라위자야왕이 돌보기 위해 아긍 타룹에게 신성한 캬이 마헤사 늘라르 (Kyai Mahesa Nular)이라는 크리스 (keris)[1] 보냈다. 자카 타룹에게 크리스를 보낸 사절이 부윳 마사하르 (Ki Buyut Masahar) 본단 크자완 (Bondan Kejawan)이라고 했다. 아긍 타룹은  본단 크자완이 브라위자야 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마을에서 살자고했다.
때부터 본단 크자완은 아긍 타룹의 양자가 되었다. 름부 페텡 (Lembu Peteng)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나왕시가 여성이 되었을 둘이 결혼했다. 자카 타룹이 돌아가신 후에 름부 페텡은 새로운 아긍 타룹이 되었다. 나왕시가 그타스 판다와 (Ki Getas Pandawa)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나중에 아긍 그타스 판다와가 아긍 슬라 (Ki Ageng Sela)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아긍 슬라는 파넴바한 스나파티 (Panembahan Senapati)이라는 마타람 (Mataram) 왕국 설립자의 증조부이다.






[1] 인도네시아 전통